... ( 어느분의 산행후기를 옮깁니다.)



智異山 戀歌 (나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되고싶다)



▲ 산행코스

성삼재→ 노고단산장→ 노고단고개→ 돼지령→ 노루목→ 삼도봉→ 묘향대→ 삼도봉→ 용수골→ 피아골산장→ 직전마을 (휴식시간 포함 9시간 산행)


▲ 산행후기

어느 날 갑자기 뒤돌아볼 틈도 없이 살아온 세월들이 속절없이 느껴지는 시간이 부쩍 많아진다.
더하고 싶지 않아도 더해지는 연륜의 나이테 때문일까?
아니면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탓일까?
계절의 향연은 어김없이 시작되고 있다.

갖고 싶은 것을 가져야하고, 해보고 싶은 것을 해야하고, 누리고 싶은 것을 누려야하고,
먹고 싶은 것은 먹어야하고, 쉬고 싶을 때는 쉬어야하는
세속적인 오진(五塵)의 삶을 위해 열심히 달려온 고단한 여정의 흔적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덧없이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면 한없는 회한(悔恨)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처럼 산행전야는 항상 고독감에 쌓여 왠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또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서일까?

태풍으로 지리산 산행을 두 번이나 포기해야만 했는데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전형적인 가을 날.
지리산으로 향하는 내 마음은 이미 어느 산자락을 헤매고 있다.
그래서 지리산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희망과 기쁨을 안겨주므로
수많은 시련과 고난에서도 자신을 굳건히 지탱해 왔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지나치게 지리산에 집착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편집광(偏執狂)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빛 바랜 추억들을 하나 둘 들춰낼 때마다
언제나 그 안에 지리산과 얽힌 인연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색과 안식을 안겨주는 사랑하는 연인의 품속 같은 그곳에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를 만들기 위해 나는 오늘도 지리산에 간다.

진정한 행복이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어떤 일에 열정적으로 몰두할 때 싹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리산에 갈 때면 왠지 모를 Mount-orgasm을 느낀다.


오늘 산행은 돼지령에서 질매재를 거쳐 왕시리봉에 올랐다가 구산마을로 하산하기로 한다.
왕시리봉의 으악새 향연과 지리10경인 섬진청류(蟾津淸流)가 눈에 선하게 다가선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고개를 향하는 길은 언제나 무언가를 얻으려는 구도자의 자세를 견지한 탓인지 항상 初心의 자세로 진지해진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삶의 가치를 한 차원 높게 up-grade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안에 대하여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우(遇)를 범하지 말아야한다.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는 보편적 삶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한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이 사는 것이 아니고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다함께 어울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주체성이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시류(時流)에 휩쓸려 살아가는 것보다
뿌리깊은 나무처럼 흔들림 없이 자아실현을 위해 온갖 힘을 다하는 모습이
더욱 돋보이는 사회풍토가 조성되어야할 것이다.

누군가의 몫을 차지하기보다는 내 몫을 나눠주고,
누군가의 허물을 비난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칭찬하고,
누군가에게 내 짐을 지워주기보다는 그 짐을 내가 짊어지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기보다는 내가 먼저 사랑을 베풀어주는 진한 감동이 함께 하는 나눔의 삶을 살아가려고 부단하게 노력해보지만 언제나 마음만 앞선다.
아직도 오욕(五慾)에 대한 열망의 꿈을 접어버리지 못해서일까?

"이곳으로 가면 안됩니다. 인화물질을 휴대하고 있으면 과태료를 추가해서 부과합니다."
돼지령에 공단직원들이 반달곰 추적안테나를 들고 지키고 서있다.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갈 수 있지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일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꼭 해보고 싶은 욕망이 인간의 원초적 욕구본능인지도 모른다.
반달곰을 살리기 위하여 통제구역으로 설정해 놓은 곳이나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이 금지된 곳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면 산행해보고 싶은 것이 진정한 산꾼들의 순수한 열정일 것이다.
끝임 없이 타오르는 욕구를 자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느껴보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

지정된 산책로를 벗어나 수많은 골짜기와 지 능선에 자신의 체취를 남기고 싶은 동물적 본능 때문일까?
누군가가 갔다 왔기에 나도 가야하는 경쟁심리일까?
아니면 어디 어디에 갔다 왔다고 자랑을 늘어놓기 위한 영웅심리일까?
우리는 왜 그곳을 갔다오려고 하는 것일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그 현장에서 재조명하기 위해서일까?
아무튼 가고 싶어하는 者와 막으려는 者의 틈새에서 원만한 해결방안이 강구되어야할 것이다.


이럴 때는 당초계획을 빨리 접고 또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묘향대를 갔다가 피아골로 하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스스로 돌아서자
공단직원들이 오히려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무사히 잘 다녀오십시오."하고 인사까지 한다.
어차피 부딪쳐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면 빨리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나가 버린 것에 지나친 집착과 미련보다는 새롭게 다가오는 것에 대하여 기대를 갖고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다가올 새로운 것을 놓쳐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뒤늦게 가슴을 치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변경된 산행목적지를 향해 꾸준하게 걸어간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가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꾸준하게 걷는다.
누군가에게 기대면서 살아가는 것보다 자신의 의지로 꼿꼿하게 일어서려는 마음으로 가파른 길을 거뜬하게 올라선다.
절망감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부여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잘되면 내 탓이요. 잘못되면 조상 탓으로 여기지 말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이다.
대충대충 적당하게 넘어가는 기회주의로 사는 것보다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최선을 다해 뛰면서
흘리는 땀방울은 보석처럼 고귀하다고 생각한다.

묘향대로 가는 길은 아직까지는 오염되지 않은 전형적인 심마니 길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곳도 뚜렷한 산길로 변할 것이다.
狂速團의 표지가 나부끼고 이름 모를 야생화가 만발한 길을 걸어간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토끼봉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포근하게 느껴져 매우 인상적이다.

고즈넉한 모습의 묘향대에서 가을의 낭만을 흠뻑 느낀다.
마당 한구석에 구절초와 용담이 어우러져 피어있는 모습이 때 이른 만추의 운치를 자아낸다.
사진기를 가지고 가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쉽다.

묘향대에서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참선하는 스님에게 방해를 끼쳐드리는 것 같아
샘물 한 모금을 들이키고 삼도봉으로 되돌아오다가 계곡근처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우리에게는 즐거운 점심식사지만 수도자에게는 우리들의 행동이 몹시 거슬릴 것이라고 판단되었기에 옹색한 장소에서 점심을 먹는다.

자식을 이긴 부모 없다고 애들 때문에 집사람이 서울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져 어쩔 수 없이 손수 준비해온 점심을 먹는다.
그 동안 혼자서 생활해보니 불평 한마디 없이 모든 것을 척척 알아서 처리해준 그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요즘 새삼스럽게 느낀다.

둘이서 지리산 자락을 헤매던 지난 시절이 그리워진다.
건강이 좋지 않아 산에 다니지 못해 혼자 산에 갈 때마다 안타가운 마음이 앞선다.
지리산의 정취를 듬뿍 담아 안겨주리라.
이렇게 우리는 친구처럼 오순도순 살아가련다.

피아골산장으로 가는 용수골은 삼도봉 조금 못미처 갈림길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뚜렷한 길이 아니므로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힘든 길을 택해서 내려가는 것이 어쩌면 바보스런 행동인지도 모른다.
나이 생각은 하지 않고 마음만 앞서 좋은 길을 내팽개치고 왜 이처럼 어려운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을 좋아할까?
왕시리봉을 가지 못한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어려운 길을 헤쳐가려는 것일까?

언제나 정적에 휩싸인 계곡이 오늘따라 이쪽으로 내려오는 단체 산행객들이 있어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불무장등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사고가 발생하여 공단직원들이 지키고 있으므로 이곳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폭우로 인하여 계곡의 바윗돌들이 나뒹굴어져 어려움이 뒤따른다.
일행 한 분이 다리가 아파서 더 이상 걷지 못하겠다고 울상이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발생되었으나 응급치료를 해서 조심스럽게 내려오다 보니 피아골산장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수동적이거나 무기력하다면 자신이 소망하는 꿈은 물론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이 산행과 너무나 흡사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또다시 오르막이 반복된다.
힘들어서 못 가겠다고 어느 지점에서 포기한다면 코스를 변경해야만 한다.
우리도 살다보면 어느 고비에서 정말로 힘든 고비를 맞이한다.
그럴 때 산행에서 체득한 경험을 응용한다면 어려운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반드시 꿈을 이루리라 확신한다.

"사람이 혼자일 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된다.
고독은 자아에 대한 사랑을 가장 분명하게 비춰주는 거울이다.
고독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로 긍정이라거나 부정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일부이며 나름대로 가치를 가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히말라야 8,000M 14좌 등정의 위업을 인류 최초로 달성한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도
산행할 때마다 심한 고독감을 느꼈다고 한다.
수많은 애환의 응어리가 알알이 배어있는 피아골산장 앞마당은 적막감이 감돈다.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에 잠겨본다.
예전 같으면 담배 한 대를 피웠을 텐데 - - - - -

언제나 질곡의 역사 한 언저리에서 限의 모닥불을 피웠던 이곳 피아골에 어둠이 서서히 밀려든다.
지친 몸을 달래보려고 콧노래를 흥얼대지만
내 마음은 이미 눈 덮인 킬리만자로 정상을 향해 떠나는 한 마리 표범이어라.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수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처럼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