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활 3개월째 접어들자 사물이 제대로 보이는 듯하다. 문래공원 시계탑 시계바늘도 보이고, 그 동안 도둑놈으로만 보이던 서울 착한 사람들의 표정도 눈에 들어온다. 광화문이 어느 부근에 있고, 신사역을 가려면 2호선을 타고 을지로 3가에서 3호선을 갈아탄다는 감각도 익혔다. 병용 선생 따라 청계산도 가보았고, 북한산도 아주 조금 맛보았다. 마누라 오라하여 헤리포터 영화도 보았다.

그 무렵, 남대문 시장에서 병용 선생과 병어조림 안주삼아 소주 한잔 나누다가, 서울생활 희비를 말하면서 까불고 싶은 마음에 사자성어 문제를 꺼내 들었다.
교/서/방/사/... 하니 낙/서/봉/신/....이라, 좌/충/우/문/은 또 어떠한고.....?

병용 선생은 내 입에서 교서... 방사... 등의 음침(?)한 단어가 튀어 나오자 객지생활 적적하여 그러한듯 많이 걱정된 모양이었다. "어허, 점잖지 못하게 무슨 그런 말을....?"

나는 희미한 미소를 흘리며 말 이어갔다.
"원래 뜻은 이렇소이다. 영*당*합*홍/신*이*아*충/시*을*3*4/동*신*상*왕/한*뚝*성*건/구*강*잠*잠/신*종*삼*선*역*강/교#서#방#사/낙#서#봉#신/신*구*대*신/이라... ㅎㅎㅎ... 그러니까... 정답은 교대-서초-방배-사당-낙성대-서울대-봉천동-신림동 2호선 지하철 역 이름 머리 글자를 딴 것이오. 아시겠소?"

그렇다면, 좌충우문은 또 무엇인가?

오전 8시경 2호선을 타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라서 문래역에서 타 충정로역에서 내려 출근하는 나는 내릴 때를 대비하여 어떻게든 좌측 문으로 붙어야만 했다. 하여..... 충정로 역에서는 좌측문, 문래역에서는 우측문으로 내려야 함을 잊지 않기 위한 생존방법을 터득한 터였다. '좌충우문, 좌충우문...'

서울 생활 이전에는 이런 달갑지 않은 방법을 생각해본 적이 없거니와 이런 애환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건만, 그곳에 있다보니 나도 그렇게 되었다. 또 더더욱 그렇게 되어 갈 것이다.

피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즐겨라,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는 명언을 되새김질 하며 오늘도 집에 가면 어떤 반찬을 만들어 만족스런 한끼를 해결하는가를 연구한다.

명래와 통화만 하였으나 건강 다소 회복한듯 보여 기분 괜찮다가, "한용이 너 변했냐"고 따지는 기봉이 녀석 생각하면 기분이 다시 본전 되었다. 시간 내어 기봉이 녀석 한잔 술로 달래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