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의 딱 반이거나 조금 더, 혹은 조금 덜 지난 사람들과 친분을 맺으며 사는 중이다.
나이에 둔감한 편인데 주변을 돌아보면서 그럴 때가 아니란 걸 자각했다.

얼마 전 역전의 용사들이 모였는데 “○○할 걸”이 대화의 주를 이루었다. 다들 놓친 게 왜 그렇게 많은지.
그것만 놓치지 않았다면 지금쯤 재벌이 되었다 승진을 했을거라는 얘기를 하다가 파파 웃음을 터트렸다.

함께 힘 모아 작은 건물을 짓자고 했던 장소가 요즘 핫 플레이스가 된 건 아무리 생각해도 배 아프다.
‘회사 보유 물량 싸게 분양한다’는 광고 문구 앞에서 “오피스텔은 오르지 않는대”라며 무시했다가 두 배 이상 뛴 ‘보유 물량’ 앞을 지나칠 때 심정을 아는가.
우리가 양보한 ‘대박’을 차지한 이들한테 뭘 좀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다가 또 웃고 말았다.



“스톱! 지나간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 법이야”하며 제동을 건 친구 덕에 다들 현실로 돌아왔다.
“야, 그래도 빚 안지고, 남한테 해 끼치지 않고, 감옥 안 갔으면 됐잖아”라는 말에 다들 안도의 박수를 쳤다.
그러고 보니 우리와 웃고 떠들던 이들 중에 사기 친 돈 들고 종적을 감추었거나, 검찰 포토라인을 거쳐 감옥으로 갔거나, 곧 빌딩 지을 거라더니 폭삭 망해 떠도는 사람이 있다.


안타까운 이들을 떠올리다가 종래에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불의의 사고나 깊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
아무 죄 없이 큰 피해를 입었거나, 기대대로 풀리지 않는 삶에 마음을 다쳐 영영 떠난 친구들.
엄청난 행운이 오히려 독이 되어 폐인이 된 사연.
얘기가 그쯤 가면 웃음은 가시고 모두의 입 꼬리는 축 처진다.

연예인들이 “인생 뭐 있어?”라고 호기롭게 외치곤 하는데 내 중간 정산의 결론은 ‘인생 뭐 있다’는 것이다.

계속 좋은 쪽을 짚을 순 없지만, 계속 행운만 골라내긴 힘들지만, 좋지 않은 건 가려낼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구구절절 쌓인 사연과 너와 나의 경험이 안기는 지혜야말로 삶의 선물이다.
마음을 비웠을 때 비로소 인생은 비밀을 하나씩 꺼내 보인다.

모임은 “남한테 욕 안 먹고 세금 착실히 내면서 이만큼 산 것만도 장하다”는 자화자찬으로 끝났다.
평탄하게 살기, 이 힘든 걸 해낸 만큼 앞으로도 잘 살자고 격려하다가 또 파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