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 사무실 밖 주위를 거닐며 봄을 만끽한다. 신록의 계절이라는 의미를 곱씹으며 계절의 고마움을 느껴본다.
잘 정돈된 관상수들의 자태...
‘허어~ 참 곱기도 하다. 가만! 저건 매실 아닌가? 토실토실 살찐 매실들이 많이도 열려있다. 아! 그랬지?' 갑자기 떠오르는 잊고싶은 추억
그랬다. 나는 비겁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을까? 지금의 초등학교는 건물대신 허허벌판이었으니..
장터에서 김병용 선생을 만난 것이 화근이었다. 매실을 서리하기로 한 것이다.(내가 먼저 제안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함) 어떻게 쓸 것인지는 모른다. 그저 커다란 매화나무에 올라가 주인 몰래 토실토실 잘 여문 매실을 훔치기로 한 것이다.
거짓말로 엄마를 졸라 매실 담을 커다란 소쿠리를 머리에 쓰고 병용 선생과 손을 잡고 발맞추어 그 매화나무로 향했다. 가는 도중 우리는 약속을 했다. 내가 하천에 올라가 망을 보다가 주인이 달려오면 “뻐꾹, 뻐꾹”두번을 신호하기로.... 그 소리를 들으면 병용선생은 내가 있는 하천 쪽으로 달려와 냇물을 건너 빠져나가기로 계획을 수립하였다. 주인이 달려오더라도 도망갈 시간이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모든 준비는 계획대로 순조로웠다. 소쿠리를 건네받은 병용 선생이 나무로 올라갔다. 나는 군부대 보초병 마냥 유심히 사방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였다.
하천에 드러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후에 펼쳐질 풍성한 수확물들을 생각하며 스스로 만족감에 젖어 큭큭 웃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 그만 따고 왔으면 좋으련만....
그 때였다. 몸을 돌려 병용선생을 보고자 하였을 때 내가 망보고 있는 위치에서 좌측(현재 초등학교 정문 정도)에서 주인인 듯한 남자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어오고 있는 것 아닌가? 아, 아!! 사람이 그렇게 빠를 수 있을까?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을 뿐, 약속한 뻐꾹 소리를 내지 못했다. 아니 소리를 지르려 해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꿩새끼 마냥 대가리만 밑으로 감추고 오들오들 떨고만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나의 공범 김병용 선생은 현행범 체포되어 그 억센 남자의 손에 이끌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만 살겠다고 생각하고 도망칠까 궁리하다가... 소쿠리는..? 엄마는?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 똑같은 상황이었다.
나는 아저씨 앞에 나타나 검정고무신을 압수 당한 채 왜 잘못했는가를 설명해야만 하였다. 눈물이 뒤범벅 되도록 빌고 또 빌고 새사람이 되겠으니 용서해 달라고 빈지 약 3시간 후.... 해질녘이 되어서야 우린 풀려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