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
제 목 |
이 름 |
조 회 |
등록일자 |
1356 |
이제 누구도 장담할수 없다 1분뒤의 삶( 빌려온 글) |
김 종 호 |
1114 |
11-01-20 0 |
내 용 |
최근 우리 사회는 풍요 속에서 위험도 함께 증폭되고 있다. 현대문명이 보여주는 풍요와 위험의 이중나선구조다. 풍요의 금자탑과 위험의 바벨탑이 마치 경쟁이나 하듯 치솟는 형국이다. 한국 이 거대한 위험을 일상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위험사회로 들어선 지는 오래됐다. 위험이 더 이상 우발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위험 자체가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불안 폭증의 시대, 위험 일상화의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위험과 재난이 2000년대 후반 한국 소설의 주요 소재로 등장한 것을 보면 위험의 일상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재난의 시대, 파국과 위험의 상상력이 한국 소설을 삼켰다'는 논평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불안과 위험, 안전과 성숙으로 진단해야 하는 과제를 던져준다. 국경을 넘나들며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불안과 위험의 일상화 속에서 한국 사회는 과연 어떤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가. 위험의 일상화에 대해 고민은 하고 있는가.
↑ [조선일보]
↑ [조선일보]박길성 고려대 교수·사회학
우선 현대사회 자체가 위험의 내용과 성격이 종전과 사뭇 다른 '메가 리스크(Mega Risk)'에 직면하고 있다. 네트워크, 바이오, 인공지능, 나노 같은 최첨단 테크놀로지에 의한 예측할 수 없는 위험들이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끊기는 순간 몰락하게 되는 네트워크 기술이나 바이오 기술의 극단적인 활용이 풍요와 재앙의 양면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알 수 없다. 나노 기술은 어떤 물질이라도 만들어내면서 신(神)의 경지를 넘보고 있다. 날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위험이 현실 세계의 지칠 줄 모르는 욕망과 합쳐지면서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절멸의 상황으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감돈다.
여기에 더해서 한국 사회 특유의 트레이드마크는 돌진형의 압축 근대화다. 정해진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장주의가 최고 가치로 여겨져 왔다. 절차와 과정의 정당성이 무시됐고, 안전보다 모험, 내실보다 외형, 심사숙고보다 임기응변이 생존에 더 유리한 사회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성과주의에 매몰되면서 안전 불감증은 개발시대가 남긴 우리 삶의 습속(習俗)으로 자리 잡았다.
압축적인 근대화에 이어 빛의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는 사이버 공간을 넘어 일상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테러를 양산한다. 개인 정보가 대규모로 줄줄 새는 사건이 너무 자주 발생한다. 한국처럼 연결 고리가 강한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넘기기에는 그 심각성이 너무 크다. '네트워크 위험사회'의 모습을 한국만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나라도 드물어 보인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북한 리스크라는 외적 요인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60년 넘게 위험에 노출돼 있으면서 일상화됐음은 물론이고 위험의 정도를 잘 느끼지 못하는 무서운 결과가 만들어졌다. 지난해 우리는 천안함 폭침(爆沈)과 연평도 포격을 연달아 겪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북한 리스크를 다시 절감하게 됐다.
이제까지 언급한 위험에 관한 구조적 요인들에 더하여 한국 사회는 위험사회를 가중시키는 독특한 문화적 인식구조를 갖고 있다. 첫째는 '잘 되겠지' '좋아질 거야' '무슨 수가 있겠지' 등 근거 없는 낙관주의이고, 둘째는 '위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비겁한 태도'라는 대책 없는 모험주의이며, 셋째는 '위험이 닥쳐도 나는 괜찮겠지'라는 자기 예외주의다. 근거 없는 낙관론은 대책 없는 모험주의와 결합해 위험의 잠재적인 폭발성을 가중시킨다. 한국 사회만큼 대책 없는 모험주의 신화가 각광받는 사회도 없다. 여기에 자기 예외주의는 위험에 대한 대비를 무색하게 만들며 안전 불감증으로 이어지게 된다.
일찍이 1980년대에 '위험사회론'을 주창했던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2008년 한국을 방문, 조선일보 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아주 특별하게 위험한 사회'라고 지적했다. 그가 지적한 아주 특별하게 위험한 한국 사회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 한 해만 봐도 대형 사건과 사고에 의한 위험의 연속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많이 우왕좌왕했던가.
선진국이란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위험을 오늘의 문제인 듯 준비하는 나라다. 그리고 위험이 발생했을 때 분란 없이 사회적 해결 방향을 만들어내는 사회가 진정한 선진사회이다. 이런 기준에 비춰보면 한국 사회는 아직도 많이 선진사회에 모자란다.
객관적 위험이 같더라도 신뢰가 부족할 때 사회적 불안은 훨씬 커진다. 폐쇄된 사회에서 기술의 위험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위험사회를 넘어 안전사회로의 전환에 사회적 신뢰와 투명성은 없어서는 안 될 핵심 과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크게 빠진 것은 시민 교육이다. 이제 위험의 일상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개인과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무엇을 숙지하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시민 윤리와 공공질서의 차원에서 가르치고 실습해야 한다. 시민 교육을 통해 공존과 안전에 대해 더 많이 논의할수록 안전한 삶에 더 가까워진다는 점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각자 개별적으로 뛰어서는 절대로 제압할 수 없는 것이 네트워크 위험사회의 특징이다. 정보 소통 급증에 따른 사이버 불안과 네트워크 위험을 종합 관리할 기구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 기구는 시민들에게 공공성의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한다는 시그널을 분명하게 주어야 한다.
위험 폭증의 시대에 정부는 위험 관리를 정책의 핵심에 올려놓아야 한다. 체제 존속의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하루가 멀다고 새로 등장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위기 관리 능력은 사회 발전의 최우선 요소이다. 정책 결정자들은 위험 관리가 부담이 아니라 공공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을 깨달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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