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제 목 |
이 름 |
조 회 |
등록일자 |
| 51 |
30년전 시골마을의 중년이 아저시를 그리며 |
윤정현 |
2476 |
00-10-08 0 |
| 내 용 |
우리 고향엔 유난히도 미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이들 스스로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가족관계나, 사회관계 속에서 발생된 것이 대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중녕이'도 마찬가지였다.
중녕이아저씨. 지금 이렇게 부르지만, 어렸을 땐, 그냥 '중녕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깐, 그 중녕이아저씨는 우리 아버지와 1928년생으로 동갑이었다. 지금이야 옛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28년생이면 고생 께나 한 세대다. 우리 아버지 역시 일제말 태평양전쟁이 극에 달하던 시절 일본 오끼나와로 징용을 가셨으니깐.
어쨋든 중녕이는 미친 사람이었는데, 우리 마을에 사는 우리 아버지 동감내기라서 자주 우리 집에 들러 사랑채 같은 곳에서 묵고가곤 했다. 어렸을 때, 여러 사람들에들은 사연은 이랬다.
어머님 말로는 어머님이 시집와 중녕이의 소문은 얼굴 잘 생기고, 노래 잘하는 총각이었다 했다. 총각 때 중녕이가 노래를 부르면, 너무도 잘 생기고 목소리가 구성져서 처녀들이 좋아했다고 했다. 그런 중녕이가 미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부터였다 했다.
중녕이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중녕이 형님은 중녕이가 짓던 논을 빼앗기 위해 중녕이를 자기네 집 모꼬시나무에 사흘 밤낮을 두꺼운 고무동앗줄로 묶어놓았다 한다. 그때 중녕이는 양손이 꼬이고, 얼굴이 일그러져버렸으며, 정신이 나가버렸고, 말도 못하고, 그때부터 결혼이고 뭐고, 집도절도 없이 우리 동네를 중심으로 들짐승처럼 산과 들로 돌아다니는 생활로 일관해오고 있었다.
그러니깐, 중녕이는 세수도 않고, 옷도 다 헤진 것을 입고다녔다. 물론 몸에서는 심한 악취가 풍겨서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않았으며, 여늬 집에 가서 밥을 달래도 잘 주지 않았으며, 잠자리를 청해도 쉽게 방을 내주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집에 자주 온 것은 아버지의 젊었을 적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우리 동네를 중심으로 면내는 물론이고, 읍내 여기저기, 심지어는 해남이나 장흥 같은 곳에서 목격되기도 했다. 빈 집에서 자기도 했고, 몇달 만에 불쑥 마을에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는 어렸을 때라, 자주 '중녕아, 중녕아' 하면서 놀려먹곤 했다.
그래도 난 친구들하고 있을 때는 놀려먹었지만, 둘이 마주칠 때는 함부러 하지 못했다. 아버지 친구였으니까. 그 중녕이가 얼굴이 이그러지고 말을 못해도 청년시절 아버지와의 우정은 대단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깊은 밤에 나타나도 결코 어머니가 그를 그를 쫓아내지 못했으니까.
그런 우정 때문인지, 어느 겨울 아침엔 이런 일이 있었다. 그러니깐, 중녕이는 그 추운 겨울 밤중에 산속을 헤메었는지, 눈이 수북히 쌓인 이른 아침에 우리 집으로 얼어죽은 꿩을 가져왔다. 말을 못하니깐, 그저 눈만 둥그렇게 뜨고, 큼지막한 꿩을 툭 던져줬던 것이다. 자기는 밤잠을 못자고 산속을 헤메고 다녔으면서 꿩 한마리를 주워서 친구네 집에 가져다 준 거였다.
내가 고등학교엘 다닐 때는 광주로 '유학'을 와, 토요일 같은 때 집엘 가려면 직행버스를 타고 강진읍까지 가서는 그곳에서 완행버스로 갈아타고 마을까지 가곤 했는데, 그런 때 차를 기다리다가 중녕이와 마주치곤 했다. 그러면, 중녕이는 터미널 근처에서 쓰레기통 같은 델 하릴없이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다가와 '너 00 지? 00아들이지?'하면서 서툰 말을 걸어오곤 했다.
그때는 사춘기 무렵이라, 주변에 여학생들이 있어서 어지간히 챙피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반갑기도 했다. 그렇게 중녕이는 꼭꼭 나를 볼 때마다 아버지 안부를 묻는 거였다. 그러니깐, 중녕이는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지만, 어머니 말로는 실은 미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엔, 가끔씩 시골집 생각을 하면서 이상하게도 중녕이를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어쩌다 시골집엘 가서 그를 만나면 반가웠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의 일은 너를 포함해 우리 가족 모두에게 눈물을 안겨주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룬 뒤, 삼호제를 하루 앞두고 두 누나들은 하얀 소복을 입고 강진읍내로 시장을 보러 갔었는데, 시장을 보고 또 둘이서 눈이 퉁퉁 부어서 돌아왔다. 그리고 모여앉은 식구들에게 말했다.
누나들이 읍내 장에서 물건을 사다가 장터를 돌아다니던 중녕이를 봤다는 거였다. 그리고 중녕이도 두 누나가 하얀 소복을 입은 걸 보고 다가오더라는 거였다. 그래서 아버지 생각이 나 식당에 데리고 들어가 국밥인가를 사줬다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식구들은 모두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그 중녕이, 만에 하나 지금 살아있다면, 80객이 되었을텐데, 지금 시골마을에 가서 내가 그이의 소식을 물은 적도 없고, 누가 말해주지도 않았으니, 아마도 그는 그렇게 산과 들을 헤메다 세상을 떴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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